벤자민 브래튼 : “TED는 무엇이 잘못되었나?”

* 주: TED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TED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학자들을 연예인처럼, 학문을 인스턴트 식품처럼 만든다는 비판이 대표적이죠. TED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하여, 하나를 소개합니다. (번역: 김희정, 이시현, 남윤정)

We need to talk about TED

우리 문화에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때로는 현재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듣기 좋게 돌려 말해서 무례하거나 자극적으로 들리지 않게끔 잘 포장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왜 TED가 언급하는 촉망된 미래가 현실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는지 궁금해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강연 내용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강연 속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잘못된 걸까요?
저는 첨단기술, 문화의 확장, 어떻게 첨단기술이 특정 분야를 구체적으로 구성하게 하고, 그 결과로 어떻게 문화가 기술의 진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글을 씁니다. 이것은 철학과 디자인이 교집합 하는 부분인데요.
그래서 저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구체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 뿐만 아닌 많은 사람들이 한걸음 물러서서 TED라는 지적단체가 정말 실천력이 있는가에 관한 진중한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저의 오늘 TED 강연은 저의 일도, 저의 책도, 늘 하는 말재주 자랑도 아닌 TED가 무엇이고, 왜 TED 강연은 현실과 동떨어졌는지 얘기할까 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지나친 간소화’ 입니다.
물론 저는 자신들만의 명석한 두뇌로 열심히 어떤것을 연구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서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사람들에게 어떤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TED는 너무 멀리 갔다는 것이죠.
일화를 하나를 말씀드리죠. 저는 최근에 천체물리학자인 한 친구의 프레젠테이션에 갔었습니다. 이 친구는 잠재적인 투자자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었구요. 제 생각에 그 친구의 강연은 명료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전 여기 UC샌디에고 시각예술 교수라 천체 물리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어도 강연이 꽤 괜찮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강연을 듣던 기부자가 말햇습니다. “이번 건은 넘어갈게요. 흥미가 안생기네요.” “좀 더 말콤 글래드웰(기자) 같았으면 좋겠네요.”
이 쯤해서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상상이 되시나요?
생각해보세요. 실질적인 지식을 만들어내는 과학자가 그럴듯하게 흉내낸 통찰력을 베껴쓰는 기자를 닮아야한다니! 이건 대중화가 아니죠. 이것은 달콤한 쵸콜릿을 몸에 좋다 소문난 영양제로 둔갑시켜 영양보충 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모조품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이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 중 하나이죠.

What is TED?

그래서 TED는 뭐죠?
TED는 아마도 누군가가 말하길 세상을 바꿀만한 아이디어에 대해서 열심히 떠들어대면 그대로 세상이 바뀔거라 믿는 가설 같은 것일지도 몰라요. 이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또 이건 두 번째 문제가 되구요.
TED는 아시다시피 Technology(기술), Entertainment(오락), Design(디자인)을 상징하죠. 저에겐 TED는 그저 그럭저럭 괜찮은 오락성 정보전달 시스템입니다.
TED에서 주로 쓰이는 강연내용 전달방법은 통찰력과 개인적인 증언의 조합으로 이루어지죠. 연사들은 자신의 통찰력과 고조되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노력과 고난들을 이야기 속에 풀어 놓습니다.
TED의 관중들은 이것으로부터 무엇을 얻길 기대할까요? 통찰력의 대리만족? 순간 번뜩이는 직관? 결국엔 모든 게 다 잘될꺼라는 긍정적인 감정? 아니면 영혼을 울릴만한 감동일까요?
듣기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현재 맞딱뜨리고 있는 문제와 이런것은 전혀 상관관계가 없어요. 현실문제들은 꽤 복잡하고 골치 아프고 그래서 명쾌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 문제들은 어떤 누군가의 낙관주의로 해결될 일들도 아니고요.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그럴싸하게 들리는 정보들을 흘리는 연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그리고 청중들의 시간을 흥청망청 날려버리는 것은 너무 큰 낭비입니다. 냉소적으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별 효과도 없습니다.
최근에 TEDGlobal은 TEDx 오거나이저들에게 메모를 보냈었는데요. 내용은 연사들의 업적이 불가사의하고, 음모론적이거나, 신시대 ‘양자신경에너지’ 같은 영역을 다루고 있다면 섭외를 피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연구 영역에 지지를 얻으려는 선동에 휘말리지 말라는 것인데요. TED는 상상력이 풍부하지만 현실성있는 업적을 가진 연사들을 섭외해야 합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TED 글로벌은 이것 때문에 열기가 식었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가짜 과학과 가짜 약에는 No를 외쳐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 가짜 과학, 가짜 약과 평행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가짜 정치, 가짜 혁신 입니다. 이런 점에서, TED는 나아가야할 방향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짜 정치학의 절정이 몇년 전 TEDxSanDiego에서 보여지지 않았나 싶은데요. 제 생각엔 여러분들 잘 아실겁니다, Kony2012 소셜미디어 캠페인을요. 그래서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죠? 에반젤리칼의 한 서핑하던 친구가 아프리카로 갑니다. 그 친군 미국드라마 ‘Glee’의 멤버들에게 대학살을 설명하는 비디오를 만들어요. 하지만 세계는 그의 직관이 자기망상 수준 밖에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앙 아프리카의 복잡한 지리정치학은 그 자리에 굳건하게 남아있죠. Kony도 여전히 그 곳에 있습니다. 이게 이야기의 끝이에요.
영감이 어떤 변화의 손길이 될 때 그것은 혼동으로 인지되고 마는 겁니다. 당신이 이것에 냉소적이지 않다고 한들 의심이 가는 것은 분명할겁니다. 가짜 약에 의심을 두는 것 만큼, 가짜 정치학에도 의심을 가져야 합니다.

T and Technology

T – E – D
첫번째, 기술에 대해서 말씀드릴께요.
우리는 변화가 가속화될 뿐만 아니라 변화의 속도 또한 가속화 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전 지구를 아우르는 컴퓨터 전송능력 관점에서 보면 사실이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변화 속도와 컴퓨터 능력은 서로 관련이 있고 우리는 문화의 감속화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를 미래의 정보 기술에 투자합니다. 자동차 같은 것에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18세기 스타일의 앤티크한 디자인을 더 좋아하는 듯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진 미래에, 모든 것은 바뀔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될 때 가능해요. 예를 들어 우리는 구글 글래스가 있어도 여전히 비지니스 복장이 필요하죠.
이런 지지부진한 변화가 미래로 가는 올바른 길이라 할수 없을 것 같아요. 이것은 굉장히 보수적인 생각입니다. 더 많은 기가플랍(컴퓨터 속도)이 우리를 발전시켜 주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가 한 시스템으로 번지게 된다면 무어(Moore)의 법칙의 엄청난 효과가 배가 되어 해를 끼칠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커브를 따라가는 연산과 같은 것이고, 전 이것이 올바른 지식의 궤도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은 연구가 포스트휴머니즘부터 지구온난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심도있는 기술문화의 변동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TED가 하는 일은 너무 기술에 치우쳐 있고, 그 기술에 대해서도 충분히 깊은 연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가짜 기술 급진주의일 뿐 입니다. 위험을 단순히 스릴이라 느끼며, 편안함을 재차 확인하려고만 하죠. 우리의 기계들은 나날이 발달하지만 인간은 멍청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과 기계 둘 다 모두 지능적이게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미래를 향한 관점도 가능합니다.

E and economics

TED에서 E는 경제를 상징하는 것이 더 나을수도 있을 겁니다. 새로운 평가 시스템을 계획하는 것, 회계상의 거래 외부 효과를 교환하거나, 조정된 계획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 등등이 이런 것에 해당될 수 있겠죠. 여러 주들과 시장들이 충분히 좋은 예시가 아니어서, 우리 생각은 냉전상태에 굳어져 있습니다.
더 곤란한 것은, 경제학이 형이상학처럼 이야기될 때 입니다. 마치 현재 시스템이 이상적이지 못한 나쁜 예시라도 되는 것 처럼 말이죠.
이론상의 공산주의는 평등주의적인 유토피아 입니다.
사실 기존의 공산주의는 생태학의 파괴를 의미했습니다. 이는 스파이 활동을 하는 정부와 형편없는 자동차, 강제노동수용소 등을 떠올리게 하죠.
이론상의 자본주의는 로켓선과도 같아요. 나노 의학이나, 아프리카를 구하는 Bono(밴드 U2 보컬)와 같이요.
사실 기존의 자본주의는 월마트나 McMansion 같은 호화저택, 라스베가스 아래 하수구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라이언 씨크레트스(TV show 사회자)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생태학적 파괴, 스파이활동을 하는 정부, 구식의 대중교통, 그리고 민영 교도소 같은 문제점들이 떠오르네요.
그렇지만, 다른 많은 대안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하이에크(Hayek) 스타일을 살짝 더한다던지, 아니면 약간의 케인즈(Keynes) 스타일을 더하는 것들과 같은 것입니다. 왜 일까요?
최근 몇백년간 우리는 우리 삶에 크게 영향을 주는 거대한 진보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하지만 웃긴 것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시스템은 그 시스템을 뭐라고 칭하던 간에 현대 기술들을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하지만 끝내 무엇이던지 이 시스템이 이 기술들의 발전을 억압하고 맙니다. 새로운 경제 구조가 바로 그 전제 조건에 해당합니다.

D and design

‘D’는 디자인입니다. 아마 우리의 디자이너들은 “영원한 선구자” 프로젝트를 반복해서 표본으로 지정하는 대신에, 그리고 왜 이 프로젝트가 대규모로 실행되지 않는지 의문을 품는 대신 계획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계획이나 구상이 중요하긴 하지만, 다른 이유로 중요합니다. 계획 자체에 매우 흥분하기가 쉬운데, 왜냐하면 미래에 관해 말할때처럼 당장의 골칫거리를 직접 다루는 것을 피해 편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화기나, 무인항공기나, 게놈 프로젝트 처럼요. 우리가 샌디에고와 라호야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구요. 이 기술들이 우리에게 놀라운 이득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그들은 NSA 스파이 활동의 근본이 됩니다. 사람들을 죽이는 로봇을 공중에 띄우기도 하구요. 생물학 개체들을 대량 민영화 하기도 합니다. 이것도 저희가 하는 일 입니다.
이제, 이 기술들의 잠재성은 멋지기도 하면서 약간은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이 기술들을 좋은 미래로 이끌기 위해서 “혁신”으로써의 디자인은 그 자체로 그렇게 강력한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우리는 “면역”으로써의 디자인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혁신”들은 적극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And so…

그래서 모든것을 해결할 뚜렷한 아이디어를 말하라 하신다면, 저도 모릅니다. 그게 중요하죠. 아마도 저는 우리 인간이 ‘우리의 심각한 문제를 풀 수 있다’라고 말한다면 여러분들이 모두 다 백수나 감옥수들 통제가 쉬울때야 가능하다 생각해요.
우리가 이야기 할 만한 중요한 것들이 없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디지털 세계시민주의와 클라우드 봉건제도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더 깊은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컴퓨터 과학의 이상한 역사에 대한 논의나 앨런 터링(수학자)의 생일을 휴일로 보내는 것과 같은 것에 대해서 말이죠.
저는 세계의 지도가 새로워 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착자들의 식민주의나, 유전자적 게놈, 그리고 청동기 시대의 구시대적 발상이 아닌, 좀 더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한 것이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TED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퍼즐”이 아닙니다. ‘퍼즐’이란 비유 자체는 모든 필요한 조각들이 이미 테이블 위에 있고 제대로 맞추면 되는 그런 문제를 뜻한다는 건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퍼즐”이라고 정의된 “혁신”은 조각들을 다시 끼워 맞추고, 처리 능력을 좀 더 키워가는 혁신은 망가져버린 현재 상태를 완전 붕괴시킬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정말 우리는 말 그대로 망가져버린 현재에 살고있는 겁니다.
최근 한 TED 연사는 그의 업적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경계는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경계는 우리의 상상력입니다.” 틀렸습니다.
만일 우리가 정말 변화를 원한다면 수많은 터널을 천천히 뚫어야합니다. 역사, 경제학, 철학, 예술, 모호함, 그리고 모순들 모두를 말입니다. 단순히 기술이나 혁신에만 초점을 두는 것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을 뿐입니다.
우리는 시스템의 복잡성이 우리에게 얼마나 영향을 크게 미치는지에 대해서 이해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스템안에 너무 갇혀있고, 이 시스템 또한 우리를 가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영감에 관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대상을 설명하고, 개념을 재정비해야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코페르니쿠스 같은 사람들은 더 필요하고, 토니 로빈스 같은 사람들은 사라져야 하죠.
사회적인 관점에서 제가 하고싶은 말을 하자면, 만약 우리가 효과는 없지만 듣고 보기 좋은 것들에만 투자를 하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외면한다면 우리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도 힘들게 될 처지에 놓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경우 플라시보는 효과가 없는 정도가 아니고, 아주 해로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관심, 에너지, 그리고 분노까지 빼앗아가서 겉치레라는 블랙홀로 들어가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죠.
“평정심을 유지하고 계속 혁신하라.” 이것에 진정 TED의 메세지입니까? 저에게 이것은 전혀 고무적이지 않고,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만들 뿐입니다.
미국에서, 우익은 특정 미디어 채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채널은 현실을 겉핥기 식으로만 다루게끔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 채널이 TED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주: 위 내용은 TEDxSanDiego에서 발표된 강연이며, 가디언지에 게재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TED측의 반론도 번역해 게재할 예정입니다.